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으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당한 대형 참사였다. 방화범 김대한이 휘발유를 이용하여 1079호 열차에 불을 지르고, 이 불길이 중앙로역에 정차해 있던 1080호 열차로 옮겨붙으면서 인명 피해가 커졌다. 부실한 초기 대응, 낙후된 소방 기술 및 장비 부족, 사고 관리 시스템 부재 등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사고 이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지하철 안전 기준이 강화되었으며, 관련자 처벌과 함께 중앙로역 복구 및 안전 시설 강화, 희생자 유족 및 생존자 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명칭 |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
한글 |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
한자 | 大邱地下鐵火災慘事 |
가타카나 | テグチハチョルファジェチャムサ |
로마자 표기법 | Daegu jihacheol hwajae chamsa |
로마자 표기법 (매큔-라이샤워) | Taeku chihach'ŏl hwachae ch'amsa |
영어 표기 | Daegu metro fire |
영어 표기 | Daegu subway fire |
![]() | |
사건 정보 | |
발생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 중앙로역 |
발생 날짜 | 2003년 2월 18일 |
발생 시간 | 9시 (KST) |
사건 유형 | 방화, 대량 살인, 자살 공격 시도 |
표적 | 대구 도시철도 |
사용 무기 | 가연성 액체가 담긴 우유팩 두 개 |
최초 보고자 | 대구중부소방서 |
범인 | 김대한 |
결과 | 화재 참사 |
사망자 | 192명 |
부상자 | 151명 이상 (범인 포함) |
실종자 | 21명 |
범인 정보 | |
동기 | 지병으로 인한 실업, 확대 자살 |
재판 정보 | |
유죄 판결 | 살인 (192건), 방화 |
선고 | 무기징역 |
기타 | |
관련 법령 제정 | 도시철도 입선용 전기동차의 안전 체계 의무화 실시 및 철도차량 방염 기준 상향 및 철도안전법 제정 |
2. 사건 발생 및 전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경, 대구도시철도공사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방화범 김대한은 뇌졸중으로 부분적으로 마비된 상태였으며, 자신의 치료에 불만을 품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자살을 결심했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1]
사건 당일, 김대한은 인화성 액체가 담긴 우유갑 두 개를 더플백에 넣어 대곡역 방면 1079번 열차에 탑승했다. 그는 반월당역을 출발한 열차 안에서 라이터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다른 승객들의 제지를 받았다. 실랑이 도중 인화성 액체가 쏟아지면서 불이 붙었고,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화재가 발생했다.[1]
불길은 순식간에 6량 전체로 번졌으며, 열차 내장재의 유독성 연기가 발생했다. 특히, 알루미늄 층 사이의 단열재, 좌석 쿠션과 손잡이에 사용된 비닐과 플라스틱, 바닥의 두꺼운 플라스틱 매트 등이 타면서 짙은 연기가 발생하여 피해를 키웠다.[1]
화재 발생 당시, 지하철 지령센터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화재경보기 오작동이 잦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화재 발생 3분 후, 반대편에서 오던 1080호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면서 더 큰 참사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고를 인지한 것은 경찰과 소방서였다. 탈출한 승객의 신고와 역 근처 서문로 119안전센터의 확인으로 화재 상황이 알려졌다.
결국 이 사고로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입는 등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2. 1. 방화 및 초기 화재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경,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은 1회용 라이터 2개와 휘발유가 담긴 자동차 세척 샴푸 통(용량 4리터)을 가지고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송현역에서 안심역 방면 1079열차에 탑승했다.[18]9시 52분경, 1079열차가 반월당역을 지나 중앙로역에 도착할 무렵, 김대한은 1호차 노약자석 옆 일반석에서 라이터를 켜려다 승객에게 제지당했다. 순간적으로 불을 붙이기로 결심한 김대한은 휘발유 통에 불을 붙였다.[19]
불은 김대한의 옷과 가방에 옮겨붙었고, 객실 바닥으로 던져진 가방 때문에 불길은 순식간에 객실 전체로 번졌다. 승객들이 김대한을 제지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열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해 출입문이 열리면서 1079호 탑승객 대부분은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김대한은 다른 승객들과 함께 역사 밖으로 대피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1079호 열차 기관사 최정환은 소화기로 초기 진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가연성 소재로 가득한 전동차 내부의 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승객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최정환 기관사는 중앙사령실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대피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 때문에 중앙사령실에 화재 사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후속 열차인 1080호 열차의 피해로 이어졌다.
2. 2. 1080호 열차 진입과 참사 확대
폐쇄회로텔레비전 모니터에 연기가 감지되자 지하철 관계자들은 1080호 열차 운전사 최상열(崔相烈)에게 무선으로 연락하여 역사에 화재가 발생했으므로 주의하여 진행하라고 지시했다.[1] 1080호 열차는 중앙로역에 진입하여 약 4분 후 화염에 휩싸인 1079호 열차 옆에 멈춰섰다.[1] 중앙로역은 상대식 승강장이기 때문에, 화염에 휩싸인 편성에 인접하여 반대편 열차가 정차하게 되었다.[6] 문은 잠시 열렸다가 곧 닫혔는데, 역사를 가득 채운 유독성 연기를 차단하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1] 1080호 열차가 도착한 직후, 자동 화재 감지기가 두 열차 모두의 전원을 차단하여 1080호 열차가 역에서 출발하지 못하게 했다.[1]최상열은 상급자에게 연락하려고 시도하는 동안 승객들에게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세 번이나 안내 방송을 했다.[2] 지령센터는 상황 파악하는 동안 운행을 억제하고, 기관사에게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6] 마침내 그는 "빨리, 다른 곳으로 도망치세요. 위로… 엔진을 끄고 가세요."라는 지시를 받았다.[2] 이후, 간신히 출발 지시가 내려졌을 때는 화재로 인해 송전이 중단되었고, 피난을 제안하는 1080호 열차 기관사에게도 지령센터는 재출발만 지시할 뿐 피난은 지시하지 않았다.[6] 이때 이미 역 내부 조명도 꺼졌지만, 이 송전 이상에도 지령센터는 즉시 알아차리지 못했다.
최상열은 그 후 문을 열고 도망쳤지만, 그 과정에서 마스콘 키를 빼앗겨 열차 문을 작동시키는 기내 배터리가 차단되어 승객들이 안에 갇히게 되었다.[2] 기관사는 마스콘 키를 뽑고 피난했고, 이로 인해 전차의 문이 닫혔다.[7] 후속 조사 결과 1080호 열차에 갇힌 승객 79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2]
기관사는 즉시 모든 문을 열고 승객에게 피난하라고 알렸지만, 이미 전기 배선이 타버려 앞 두 량의 문만 열 수 있었다고 한다.[7] 기관사는 차내 방송으로 승객에게 피난을 지시하고, 한번 문을 연 채 도움을 요청하는 승객과 함께 피난했지만, 다시 전차를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운전석으로 돌아갔다.[7] 10시 10분경에는 승강장이 정전되었고, 전차는 간신히 통전은 가능했지만 전압계는 0~1500V를 오가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일단 모든 전기를 차단하고 다시 통전하여 출발 조치를 취했지만 전차는 움직이지 않았다.[7]
반대편 열차 차량도 화재 발생 차량과 동일한 구조였고, 문에는 비상 개방 장치도 있었지만, 사용법이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 기관사가 조작한 앞 두 량과 우연히 함께 타고 있던 지하철 직원이 수동으로 개방한 네 번째 량만 탈출이 가능했고, 나머지 세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량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8] 또한 화재 발생 차량과 달리 관통문이 없었기 때문에 연소되기 쉬웠다. 창문으로의 탈출도 불가능했기 때문에,[8] 갇힌 승객 대부분이 탈출하지 못한 채 화상을 입고 사망했다.
결국 사망자 192명, 중경상자 148명이 발생했다. 그중 142명이 1080호 열차에서 사망했다.
3. 시간대별 상황
다음은 사고 발생 초기 대구지하철공사 종합 사령실의 전동차 운행 및 통화 기록, 대구시 소방 본부 119 종합 상황실의 119 신고 접수 및 무전 상황 기록, 생존자들의 진술 내용, 언론 보도 내용 등을 종합하여 시간대별로 재구성한 것이다.
시간 | 상황 |
---|---|
9시 53분경 | 방화범 김대한이 반월당역을 출발한 1079호 열차 안에서 라이터로 휘발유에 불을 붙임. |
9시 53분 | 1079호 열차 기관사는 소화기로 초기 진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종합사령실에 보고하지 않은 채 대피.[1] |
9시 55분 | 중앙로역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화재 보고. |
9시 55분 30초 | 1080호 열차가 대구역 출발. |
9시 56분 45초 | 1080호 열차 중앙로역 도착, 화재 확산. |
9시 57분 7초 | 전동차 전원 끊김. |
9시 57분 39초 | 1080호 기관사, 운전사령에 조치 요구. |
9시 57분 40초 | 중앙로역 역무원, 119 신고. |
10시 2분 48초 | 운전사령, 1080호 기관사에게 승객 대피 지시. |
10시 10분 | 1080호 기관사, 마스콘 키 뽑고 탈출.[7] |
13시 38분 | 화재 완전 진압. |
4. 사고 당시 열차 무선 교신 내용
사고 당시 폐쇄회로텔레비전 모니터에 연기가 감지되자 지하철 관계자들은 1080호 열차 운전사 최상열에게 무선으로 연락하여 역사에 화재가 발생했으므로 주의하여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080호 열차는 중앙로역에 진입하여 약 4분 후 화염에 휩싸인 1079호 열차 옆에 멈춰섰다.[2] 문은 잠시 열렸다가 곧 닫혔는데, 역사를 가득 채운 유독성 연기를 차단하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1080호 열차가 도착한 직후, 자동 화재 감지기가 두 열차 모두의 전원을 차단하여 1080호 열차가 역에서 출발하지 못하게 했다.[2]
기록에 따르면 최상열은 상급자에게 연락하려고 시도하는 동안 승객들에게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세 번이나 안내 방송을 했다. 마침내 그는 "빨리, 다른 곳으로 도망치세요. 위로… 엔진을 끄고 가세요."라는 지시를 받았다.[2] 최상열은 그 후 문을 열고 도망쳤지만, 그 과정에서 마스터 키를 빼앗겨 열차 문을 작동시키는 기내 배터리가 차단되어 승객들이 안에 갇히게 되었다. 후속 조사 결과 1080호 열차에 갇힌 승객 79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2]
5. 인명 피해
총 사망자는 192명, 부상자는 151명으로 집계되었다. 발견된 시신 대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어 DNA 분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해야 했다.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185명이며, 6명은 초기 신원 미확인 상태였으나, 이 중 3명은 DNA 분석으로, 나머지 3명은 DNA분석으로도 신원확인이 불가능했다.
사고는 오전 출근 시간대에 발생하여, 희생자 대부분은 시내 백화점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가족들과 연락을 취했으며, 통신사들은 통화 기록을 제공하여 당국이 역에 있던 사람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구분 | 총계 | 1079호 | 1080호 | 중앙로역 및 기타 |
---|---|---|---|---|
사망 | 192명 | 6명 | 142명 | 50명 |
부상 | 151명 |
6. 지하철 공사 직원의 초동 대응 문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지하철 공사 직원들의 초동 대응은 여러 면에서 미흡했다. 화재 발생 초기, 지하철 지령센터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방재 관리 능력도 부족했다. 특히, 화재경보기 오작동이 잦았던 탓에 이번에도 오작동으로 판단하여 즉시 운행 중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6]
CCTV 모니터에 연기가 감지되자, 지하철 관계자들은 1080호 열차 운전사 최상열에게 무선으로 연락하여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나 1080호 열차는 이미 중앙로역에 진입하여 화염에 휩싸인 1079호 열차 옆에 멈춰 섰고, 곧이어 자동 화재 감지기가 작동하여 두 열차 모두 전원이 차단되면서 1080호 열차는 역에서 출발하지 못하게 되었다.[2]
지령센터는 1080호 열차 기관사에게 재출발만 지시하고 피난 지시는 하지 않았다. 이미 역 내부 조명이 꺼진 상태였지만, 지령센터는 이 사실조차 즉시 알아차리지 못했다.[6] 화재 발생 9분 후인 10시 2분에야 1080호 열차 기관사에게 피난 지시가 내려졌지만, 이미 전기 배선이 타버려 앞 두 량의 문만 열 수 있었다.[7]
사고 인지는 경찰과 소방서가 먼저 했다. 탈출한 승객의 신고와 역 근처 소방서의 확인으로 화재 상황이 지령센터에 전달되는 등, 사고를 예상하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6]
결국, 반대편 열차(1080호) 진입을 막지 못해 사고 규모가 커졌다는 의견이 있다. 1080호 열차에서 사망자 142명, 1079호 열차에서 사망자 6명이 발생하는 등, 1080호 열차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컸다.[7]
사건 이후, 대구광역시 지하철공사는 안전 대책 없이 일부 구간 운행을 재개하여 비난을 받았다. 또한, 사고 관련 직원들 간의 조직적인 은폐 시도와 책임 전가 의혹도 제기되었다.[7]
6. 1. 기관사의 문제점
1079호 기관사 최정환은 화재 발생 사실을 종합사령실에 보고하지 않은 채 역사 밖으로 대피했다.[21] 소화기를 사용해 화재 진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당황한 나머지 운전사령에게 화재 위치나 규모를 보고하지 못했다.[21]1080호 기관사 최상열은 중앙로역 진입 전 역 구내에 연기가 가득한 것을 발견했으나, 큰 화재가 아닐 것이라 판단해 별다른 조치 없이 진입했다.[22] 운전사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고, 열차는 자동으로 중앙로역 상선 승강장에 정차 후 출입문이 개방되었다.[22]
승강장 상황을 확인하려 하자 유독가스가 심해 "출입문을 닫습니다. 곧 출발합니다."라고 안내방송을 하고 객실 출입문을 닫았다.[22] 이후 출발을 시도했으나 전차선 단전으로 실패했고, 운전사령과 무선통화로 승객 대피에 대해 대화하던 중 급전과 단전이 반복되어 출발하지 못했다.[22]
몇 차례 출발에 실패한 후, 승객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안내방송을 2~3회 실시했다.[22] 이후 운전사령실의 지시에 따라 출입문을 개방하고 승객 대피 안내방송을 했으며, 일부 승객을 계단 입구까지 유도했다.[22]
10시 10분경, 운전사령실의 "전동차 판 내리고 대피하라"는 지시에 따라 마스터 컨트롤 키(MC Key)를 빼고 일부 승객과 함께 지상으로 대피했다.[22][23][24][25][26][27] 이 때문에 열차 문을 작동시키는 기내 배터리가 차단되어 승객들이 안에 갇히게 되었다.[2] 후속 조사 결과 1080호 열차에 갇힌 승객 79명 전원이 사망했다.[2]
대법원은 출입문이 닫힌 것은 기관사 책임이 아니라고 판결했지만,[2] 1080호 기관사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금고 5년형을 선고받았다.[2]
6. 2. 중앙로역 역무원의 문제점
중앙로역의 역무원은 9시 55분경 종합사령실에 화재를 보고했으나, 화재 규모와 정보를 알지 못했던 운전사령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28][29] 9시 57분경에는 119에 중앙로역 대합실 화재 상황을 신고했다.당시 중앙로역에는 조책임자 1명, 역무실 모니터 감시 및 수입금 관리 1명, 매표소 2명, 기기관리 1명 등 총 5명이 근무하고 있었다.[28][29] 이들은 화재 발생 후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역할 | 행동 |
---|---|
조책임자 | 역무실에서 수입금 계산 중 화재경보를 확인하고 기기관리담당자에게 현장 확인 지시. 이후 운전사령에게 화재 발생 보고(상세 보고는 못함). 119에 신고 후 운전사령 지시에 따라 승객 안내 방송. 유독가스로 인해 3번 출구로 탈출 후 병원 후송. |
기기관리 근무자 | 조책임자 지시로 화재 현장(1079호 열차) 확인 후 보고. 소화기를 이용해 초기 진화 시도했으나 실패. 이후 승객 대피 유도 중 실신하여 119에 구조. |
수입금 관리 및 모니터 감시 역무원 | 조책임자 지시로 소화 시도하려 했으나, 승객의 대피 권유로 대피. 지하 1층 대합실에서 사람들 대피시키고 밖으로 나와 병원 후송. |
제1 매표소 직원 | 비상버튼 눌러 개집표기 및 게이트 개방. 매표실 방송장치로 승객 대피 안내 방송 2~3회 실시. 유독가스로 인해 4번 출구로 대피하여 소방관에 구조. |
제2 매표소 직원 | 비상게이트 개방 및 승객 대피 안내 방송. 연기로 인해 하선 승강장 진입 실패. 벽을 짚어가며 대피 중 의식 잃기 직전 소방관에 구조. |
이처럼 중앙로역 역무원들은 화재 발생 후 초기 대응에 나섰으나, 화재 상황을 종합사령실에 상세하게 보고하지 못하고, 유독가스와 연기로 인해 효과적인 대피 유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6. 3. 종합사령실의 문제점
중앙로역의 역무원은 9시 55분경 본역 화재를 종합사령실에 보고했지만, 화재 규모와 정보를 알지 못했던 운전사령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28][29] 운전사령은 운행 중인 전체 열차에 "전 열차에 알립니다. 중앙로역에 진입 시 조심해 운전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 발생하였습니다."라는 지시만 내렸다.9시 55분 30초경, 1079호 열차와 반대 방향으로 운행하던 1080호 열차가 대구역을 출발하여 현장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중앙로역 상행선 승강장에 진입하여 정차했다. 이로 인해 1079호 열차에서 발생한 불길이 1080호 열차로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더욱 확산되었다.
화재 발생 20여 초 만에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에 설치된 승강장 감시용 CCTV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 분출량이 많았다.
1080호 열차는 화재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중앙로역에 진입, 정차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중앙로역 진입 당시 이미 승강장은 연기로 가득 차 외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1079호 열차 1호차와 인접한 1080호 열차 5~6호차 승객들은 전동차 외부 상황을 알 수 없을 만큼 연기가 가득 찬 상태였다.
중앙로역에 열차가 정차한 뒤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렸으나 연기가 밀려들어오자 기관사가 수동으로 닫았다. 기관사는 "곧 출발하겠다"는 안내방송을 반복하며 대피를 지연시켰다. 이후 1080호 열차가 도착하기 몇 분 전 역사 두꺼비집에 스파크가 발생하여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전동차는 출발하지 못했다.
결국 1080호 열차 내부는 연기로 가득 찼고, 대피하지 못한 승객들은 유독가스로 질식해 사망했다. 기관사 바로 앞 객차인 1, 2호차 승객 몇 명은 기관실로 진입하여 기관사와 함께 탈출했으나, 뒷 객차 승객들은 화재 사실을 전달받지 못해 많은 희생자를 냈다.
9시 57분 32초, 1080호 기관사 최상열은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에게 "엉망입니다. 빠른 조치 바랍니다."라고 요청했다. 운전사령은 "대기하고 승객들에게 안내방송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기관사는 "잠시 후 출발할 것이니 기다려달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잠시 전력이 공급되어 출발을 시도했으나 다시 전력이 끊기는 일이 반복되었고, 운전사령의 지시대로 승객들에게 대기하도록 안내했다.
10시 2분,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은 1080호 기관사에게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고 지시했다. 기관사는 출입문 개방 스위치를 누른 후 대피 안내방송을 하고, 객실로 들어가 대피하라고 소리치며 승객 3~4명을 계단 입구까지 유도한 후 다시 운전실로 돌아왔다.
10시 10분,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은 기관사에게 "전동차 판 내리고(열차 전원 내리고/마스콘키를 빼고) 탈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관사는 마스콘키를 뽑아 일부 승객과 함께 탈출했다. 초기 언론은 마스콘키를 뽑아 문이 열리지 않아 시민들이 죽었다며 기관사에게 책임을 떠넘겼지만, 당시 대구시의 예산 부족으로 전동차 부품들이 불연재를 쓰지 않아 화재에 취약했고, 출입문을 여닫는 공기 호스도 불연재가 아니어서 화재로 녹아내려 문을 열 수 없는 상태였다. 마스콘키를 뺀 것은 메뉴얼상 당연한 조치였고, 기관사는 운전사령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었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출입문이 닫힌 것은 기관사 책임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1080호 기관사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금고 5년형을 선고받았다.
종합사령실에는 운전사령, 전력사령, 신호사령, 기계설비사령, 통신사령 등이 있다. 이들은 열차 운행, 전력 공급, 열차 제어, 역사 방재, 무선 통신 등을 담당한다. 사고 당시 각 사령실에는 3~9명이 2~3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 운전사령: 신호, 선로전환기 취급, LDP(열차운행상황표시판) 및 CCTV를 이용한 열차 운행 감시/통제, 운전 사고 발생 시 긴급 조치 등을 담당한다.
- 기계설비사령: 지하철 역사 내 기계 및 방재 설비 감시, 제어, 이상 발생 시 응급 조치 및 관련 부서 통보를 담당한다.
- 전력사령: 전동차 운행 및 역사 전력 공급 계통 감시, 제어, 이상 발생 시 응급 조치 및 관련 부서 통보를 담당한다.
중앙로역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중앙로역 실제 화재입니다. 전혀 앞이 분간이 안 됩니다. 신고 좀 부탁드립니다."라며 화재 사실을 신고했으나, 종합사령실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119 신고를 하지 않았다.
7. 문제점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단순 화재가 아닌, 한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과 시스템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인재(人災)였다.
중앙로역 역무원은 9시 55분경 화재를 종합사령실에 보고했지만, 운전사령은 구체적인 지시 없이 "전 열차에 알립니다. 중앙로역에 진입시 조심해 운전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 발생하였습니다."라는 방송만 내보냈다. 결국 9시 56분 45초경, 1080호 열차가 현장 상황을 모른 채 진입, 정차하면서 1079호 열차의 불길이 옮겨붙어 화재가 확산되었다. 당시 중앙로역은 유독가스로 시야 확보가 불가능했고, 대현프리몰 지하상가로 향하는 방화 셔터가 차단되어 탈출 경로도 제한적이었다.[2]
1079호 열차 승객 대부분은 기관사 지시로 대피했지만, 반대 방향으로 운행하던 1080호 열차는 화재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역에 진입, 정차하면서 피해가 커졌다. 1080호 열차는 중앙로역 진입 당시 이미 승강장 연기로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
열차가 정차한 후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렸으나 연기가 밀려들어오자 기관사는 수동으로 닫고 "곧 출발하겠다"는 안내방송을 반복하며 대피를 지연시켰다. 이후 역사 두꺼비집 스파크로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전동차는 멈췄고, 내부는 연기로 가득 찼다. 대피하지 못한 승객들은 유독가스로 질식해 사망했고, 빠져나온 사람들도 암전된 역사에서 헤매다 질식하거나 쓰러져 사망했다.
9시 57분 32초, 1080호 기관사는 운전사령에게 "엉망입니다. 빠른 조치 바랍니다."라고 요청했고, 운전사령은 "대기하고 승객들에게 안내방송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관사는 "잠시 후 출발할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잠시 전력이 공급되어 출발을 시도했으나 다시 전력이 끊겼고, 기관사는 운전사령 지시에 따라 승객들에게 대기 안내방송을 했다.
10시 2분, 운전사령은 기관사에게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고 지시했고, 기관사는 대피 안내방송 후 일부 승객을 유도한 뒤 운전실로 돌아왔다. 10시 10분, 운전사령은 "전동차 판 내리고(열차 전원 내리고/마스콘키를 빼고) 탈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기관사는 마스콘키를 뽑고 일부 승객과 탈출했다.
초기 언론은 1080호 기관사에게 책임을 떠넘겼지만, 전동차 출입문은 공기로 여닫는데, 당시 대구시 예산 부족으로 불연재가 아닌 부품을 사용해 화재로 공기 호스가 녹아내려 문을 열 수 없었다. 마스콘키를 뺀 것은 메뉴얼상 당연한 조치였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출입문이 닫힌 것은 기관사 책임이 아니라고 했지만, 1080호 기관사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금고 5년형을 선고받았다.
1080호 열차에 타고 있던 금호역장 권춘섭은 비상 개방 장치로 문을 열고 승객들을 대피시켜 피해를 줄였고,[18] 2013년 6월 7일 철도안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9]
사고 후 소방관과 경찰이 출동했지만, 유독가스와 화재로 구조가 지연되었다.
사고 발생 원인을 하위직 개인 실수에서 찾아 처벌하려 했고, 사망자, 실종자 파악, 현장 수습, 유가족 대책 수립, 행정 처리 절차가 미흡했으며, 현장 보존에 실패했다. 참사 이후 화재 전동차는 월배차량사업소로 이송돼 물청소되어 그을음을 씻어냈다. 이 과정에서 전동차 화재 흔적이 훼손되어 방화 범인은 알 수 있었지만, 전동차 화재 상황 및 경위는 알 수 없었다.
대구 지하철 열차에는 소화기가 없었고, 역사에는 스프링클러와 비상 조명이 부족했다. 많은 희생자가 어둠과 연기 속에서 길을 잃고 질식으로 사망했다. 비상 환기 시스템 역시 부적절했다.
전동차 객차가 화재에 취약한 가연성 재질로 만들어진 점도 문제였다. 폴리우레탄 폼 재질 시트, FRP 소재 내장재, 폴리염화비닐 재질 내부 통로 자바라 및 바닥재 등이 사용되었다. 특히 시트는 빠르게 타면서 유독가스를 발생시켰다.[31][32][33] 당시 열차 차량에 대한 소방 안전 대책은 전무했고, 소화기 비치가 전부였다. 객차는 건축법, 소방법, 전기사업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1993년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현 대구교통공사)가 매입한 전동차량 단가는 1량당 5억원 수준으로, 예산 부족으로 대금이 더 삭감되었다. 이는 전동차를 부실한 재질로 제작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선진국 수출용 전동차 단가는 약 17억원, 서울, 부산, 인천 도시철도 단가는 약 8억원이었다.[31][32][33]
반월당역을 출발한 열차에서 방화범 김대한이 라이터로 장난치다 불이 났고, 중앙로역에 진입하면서 화재가 커졌다. 불은 열차 차체 알루미늄 층 사이 단열재, 좌석 쿠션과 손잡이의 비닐과 플라스틱 재질, 바닥의 두꺼운 플라스틱 매트 등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짙은 연기를 발생시켰다.[1]
사건 전, 김대한은 방화를 목적으로 주유소에서 자동차 세척용 샴푸 통(4L)에 휘발유를 구입했다. 주유소 측은 인화성, 폭발 위험이 높은 휘발유를 별도 확인 없이 용기에 담아 판매하여 사건 발생의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7. 1. 낙후된 소방 기술 및 장비 부족
당시 대구 지하철에는 화재 진압 기술 및 대비가 거의 없었다. 분진 마스크, 방독면, 산소통, 방열복, 연기 강제 배출 장비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사고 발생 후 3시간 이상이나 구조대가 현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2] 소방차 84대, 소방관, 경찰 등 3200명이 출동했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대구 지하철 열차에는 소화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역사 내에는 스프링클러와 비상 조명도 부족했다. 많은 희생자들이 어둠과 연기로 가득 찬 지하 역사에서 길을 잃고 출구를 찾지 못해 질식으로 사망했다. 비상 환기 시스템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2] 1,300명이 넘는 소방 및 구급대원들이 출동했고, 화재 자체는 오후 1시 38분경 진화되었지만, 유독성 연기 때문에 3시간 30분 동안 역사에 진입하지 못했다.
7. 2. 사고 관리 시스템 부재
중앙로역의 역무원은 9시 55분경 본역 화재를 종합사령실에 보고했지만, 화재 규모와 정보를 알지 못했던 운전사령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운행 중인 전체 열차에 "전 열차에 알립니다. 중앙로역에 진입 시 조심해 운전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 발생하였습니다."라는 지시만 내렸다.[2]결국 1080호 열차가 현장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상행선 승강장에 진입, 정차하면서 화재가 더욱 확산되었다. 이미 중앙로역은 유독가스로 인한 연기로 대피가 불가능할 정도로 시야 확보가 안 되었고, 대현프리몰 지하상가로 향하는 방화 셔터가 차단되어 탈출 경로도 한정적이었다. 화재 발생 20여 초 만에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에 설치된 승강장 감시용 CCTV 화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 분출량이 많았다.
1079호 열차 승객 대부분은 대피했지만, 반대 방향으로 운행하던 1080호 열차는 화재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역에 진입, 정차하여 화재가 확산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1080호 열차는 중앙로역 진입 당시 이미 승강장 연기로 인해 전동차 외부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
중앙로역에 열차가 정차한 뒤 곧바로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렸으나 연기가 밀려들어오자 기관사가 수동으로 닫았고, 승객들에게 "곧 출발하겠다"라는 안내방송을 반복하면서 대피가 지연되었다. 기관사는 급전을 받아 출발을 시도했으나, 이미 역사 두꺼비집에 스파크가 발생해 모든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전동차는 전기가 들어왔다가 바로 나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결국 1080호 열차 내부는 연기로 가득 찼으며, 대피하지 못한 승객들은 유독가스로 질식해 사망했다. 겨우 문을 열고 빠져나온 사람들도 암전된 중앙로역 내부에서 헤매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하거나, 승강장이나 지하상가인 대현 프리몰 셔터 입구에서 쓰러져 사망하기도 했다.
오전 9시 57분 32초, 1080호 기관사는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에게 열차 무선으로 "엉망입니다. 빠른 조치 바랍니다."라고 요청했고, 운전사령은 "대기하고 승객들에게 안내방송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관사는 "잠시 후 출발할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잠시 전력이 공급되어 출발을 시도했으나 다시 전력이 끊기는 일이 반복되었고, 운전사령의 지시에 따라 승객들에게 전동차 안에서 대기하도록 안내방송을 했다.
오전 10시 2분,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은 1080호 기관사에게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고 지시했다. 기관사는 출입문 개방 스위치를 누른 후 대피 안내방송을 하고, 객실로 들어가 대피하라고 소리치며 2번 객실로 이동, 승객 3~4명에게 대피를 요청하며 계단 입구까지 유도한 후 다시 운전실로 돌아왔다.
10시 10분,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은 기관사에게 "전동차 판 내리고(열차 전원 내리고/마스콘키를 빼고) 탈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기관사는 마스콘키를 뽑아 일부 승객과 함께 탈출했다. 초기 언론에서는 마스콘키를 뽑아 문이 열리지 않아 시민들이 죽었다며 1080호 기관사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전동차 출입문은 공기로 여닫는데, 당시 대구시 예산 부족으로 전동차 내장재 등 부품 대부분이 불연재가 아니었다. 출입문 개폐용 공기 호스도 불연재가 아니어서 화재로 녹아내려 열차에서 개방해도 문을 열 수 없었고, 마스콘키를 뺀 것은 메뉴얼상 당연한 조치였다. 운전사령 지시에 따라 1080호 기관사는 메뉴얼을 따랐을 뿐이었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출입문이 닫힌 것은 기관사 책임이 아니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언론 보도로 인해 1080호 기관사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최고형인 금고 5년형을 선고받았다.
1080호 열차에 타고 있던 금호역장 권춘섭은 비상 개방 장치를 취급하여 문을 열고 주위 승객들을 대피시켜 피해를 다소나마 줄였고,[18] 훗날 이 활동을 인정받아 2013년 6월 7일 개설된 철도안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9]
사고 발생 후 소방관과 경찰관이 긴급 출동해 구조 작업을 펼쳤으나, 유독가스와 화재로 현장 접근이 어려워 구조가 지연되었다.
사고 발생 원인을 구조적 문제 등 근본 원인보다는 하위직 개인 실수에서 찾아 처벌하려 했다. 사망자, 실종자 파악, 현장 수습, 유가족 대책 수립, 행정 처리 절차가 미흡했고, 결정적으로 현장 보존에 실패했다. 소방관의 진화 및 구조 활동, 취재 기자들에 의한 훼손 방치, 고위 정치인 방문 대비 현장 훼손, 군 병력 투입, 물청소, 뚫린 창문 응급조치 없이 소실 전동차 이동 등 사고 관리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참사 이후 화재 전동차는 바로 월배차량사업소로 이송해 물청소하여 그을음을 씻어냈다. 이 과정에서 전동차 화재 흔적이 심하게 훼손되어 방화 범인은 알 수 있었지만, 전동차 화재 상황 및 흔적에 대한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었다.
부적절한 비상 장비 또한 참사를 악화시켰다. 대구 지하철 열차에는 소화기가 설치되지 않았고, 역사에는 스프링클러와 비상 조명이 부족했다. 많은 희생자가 어둠과 연기로 가득 찬 지하 역사에서 길을 잃고 출구를 찾다가 질식으로 사망했다. 비상 환기 시스템 역시 부적절했다.
7. 3. 부실한 사회 안전망과 저급 전동차
대중교통 수단인 전동차 객차가 화재에 매우 취약한 가연성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문제였다. 폴리우레탄 폼 재질의 시트, FRP 소재 내장재, 폴리염화비닐 재질의 내부 통로 자바라 및 바닥재 등이 사용되었다. 특히 시트는 빠른 속도로 타면서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발생시켰다.[31][32][33] 당시 열차 차량에 대한 소방 안전 대책은 전무했고, 소화기 비치가 전부였다. 객차는 건축법, 소방법, 전기사업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1993년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현 대구교통공사)가 매입한 전동차량 단가는 1량당 5억 원 수준으로, 예산 부족을 이유로 대금이 더 삭감되었다. 이는 전동차를 부실한 재질로 제작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선진국 수출용 전동차 단가는 약 17억 원, 서울, 부산, 인천 도시철도 단가는 약 8억 원이었다.[31][32][33]
반월당역을 출발한 열차 안에서 방화범 김대한이 라이터로 장난을 치다 불이 났고,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면서 화재가 커졌다. 불은 열차 차체의 알루미늄 층 사이 단열재, 좌석 쿠션과 손잡이의 비닐과 플라스틱 재질, 바닥의 두꺼운 플라스틱 매트 등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짙은 연기를 발생시켰다.[1]
7. 4. 휘발유 판매 관리 허술
사건이 발생하기 전, 김대한은 방화를 목적으로 주유소를 방문하여 자동차 세척용 샴푸 통(4L)에 휘발유를 구입해 갔다. 주유소 측은 인화성과 폭발 위험이 높은 휘발유를 별도 확인 없이 용기에 담아 판매하여 사건 발생의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석유관계법에 따르면 자동차용 휘발유는 변형된 방법으로 임의의 용기에 판매할 수 없으며, 적발 시 해당 주유소는 강력한 행정 처분을 받는다. 다만, 기름 보관용 플라스틱 통에는 휘발유 20L, 경유 30L까지 구매 및 운반이 가능하다.8. 사고 후
이 사건은 한국 전역과 국제적으로 동정과 분노를 촉발했다.
당국은 지하철역에 더 나은 안전 장비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고, 대구 도시철도 차량 내부에 내화성 스프레이 화학 물질을 추가했다. 6개 역이 보수 공사를 위해 운영 중단되었고 2003년 4월에 복구되었다. 이 비극은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적 수치로 여겨졌으며, 한국이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안전 문제를 너무 간과했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고 후 몇 년 안에 전국의 여러 지하철 열차들이 내화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개조되었다.
2008년 12월, 대구 안전 테마파크가 개장했다. 그 목표는 대구 시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다.[5]
사고 이후 정부는 2006년까지 전국의 모든 지하철 차량 내장재를 교체하라고 지시하였다. 기존 차량은 좌석, 벽 내부 단열재 등에 가연성 소재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현재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를 비롯한 부산교통공사, 인천교통공사는 좌석을 불에 타지 않는 스테인리스 재질로 교체하였고, 한국철도공사는 불연재 모켓시트로 교체하였다. 대구도시철도공사도 모든 좌석을 불연재 시트로 교체하였다.
2003년 하반기부터 2006년까지 로윈, SLS중공업, 흥일기업 등이 내장재 교체 작업을 실시하였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철도차량과 현대로템에서 제조된 전동열차는 로템 의왕공장, 창원공장으로 회송되어 내장재를 교체하였다.
한편, 지하철 승강장에 인공암벽을 사용하는 충무로역, 마천역, 가산디지털단지역 등은 철거 및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공암반이 화재 시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라는 마감재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인공암반을 사용하는 모든 역사에 대해 불연소재로 교체하게 되었다.
사고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은 2005년 4월 1일 전량 불연재 개조를 완료하였으며, 서울 지하철의 경우 퇴역 예정이었던 차량은 2009년까지 가연재 시트를 달고 운행하였다.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사고 전동차를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1량, 안심차량기지에 3량을 보존하고 나머지는 매각하려 했으나, 유족들의 반발로 일부만 매각했다.[57]
8. 1. 관련자 처벌
2003년 4월 23일, 대검찰청 특별 수사본부는 방화범 김대한을 현존 전차 방화 치사상죄로, 기관사, 관제사, 역무원, 시설 책임자 등 지하철 직원 8명을 업무상 중과실 치사상죄로 각각 구속 기소하고, 2명을 업무상 과실죄로 불구속 기소했다.[40],[41]2003년 8월 6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검찰은 방화범 김대한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나, 심신 장애는 없으나 범행 당시의 정신 상태 등을 감안하면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일으킨 범행이라 보기 어려운 점과, 직접 방화한 1079호 열차에서는 인명피해가 그다지 없었던 점(1080열차의 진입으로 사고가 크게 확산[42]) 등이 감안되어 2004년 1월 7일 대구고등법원에서 무기 징역이 선고되었다.[43] 형이 확정되어 복역하던 김대한은 2004년 3월 8일 진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가, 2004년 8월 30일에 지병 악화로 사망했다.[44]
검찰은 사고 대처를 미흡하게 했던 지하철 직원들에게 일괄하여 법정 최고형인 금고 5년을 구형했으며, 다음과 같이 선고되었다.[45]
- 1080열차 기관사 최상열은 열차의 출입문을 닫아 버려 승객들의 탈출을 막아 많은 사상자를 내게 한 점에서 구형대로 금고 5년형이 선고되었고, 2008년에 출소했다.[46]
- 1079열차 기관사 최정환과 가장 먼저 화재 사실을 연락받은 관제사 방정민은 초동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각 금고 4년형이 선고되었다. 홍순대, 손영일 등 나머지 관제사들에게는 각각 금고 3년형이 선고되었다.
- 시설사령 2명 및 중앙로역 역무원은 직접 책임이 없음을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그러나 선고 공판 직후 재판부의 양형에 불만을 품은 유족들이 격렬히 항의하며 법정을 점거하기도 하였다.
범인 외에도 기관사 2명, 중앙로역 역무원 2명, 지령센터 직원 3명, 안전 담당자 1명 등 총 8명이 사고 당시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이유로 업무상 중과실치사상 혐의로, 지하철 관계자 3명이 무선 교신 기록을 변조한 증거인멸 혐의로 체포·기소되었다.
8. 2. 중앙로역 복구 및 안전 시설 강화
사고로 중앙로역을 전후한 교대~중앙로~동대구역 구간 운행이 중단되었고, 양쪽 구간만 운행되었다. 동대구역은 큰고개역에 설치된 회차선을 통해 단선으로 운행했고, 교대역에서 동대구역까지는 시내버스 일부를 셔틀버스로 투입하여 운행했다.[47] 중앙로역은 운전취급 및 관리역이었기 때문에 중앙로역 반복 운전을 할 수 없어 상당 구간이 불통될 수밖에 없었다.[48] 중앙로역 구조물 손상으로 2월 25일에는 반월당네거리와 중앙네거리 사이가 전면 통제되어 시내버스들이 반월당역에서 우회 운행했다.[49] 차량 통행금지는 같은 해 4월 10일에 해제되었다.[50]2003년 10월 21일, 가복구가 완료되어 중앙로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형태로 교대~동대구역 구간 운행이 참사 8개월 만에 재개되었고,[51] 12월 31일에 중앙로역에 정차가 가능해지면서 완전히 정상화되었다.[52][53][54]
화재 참사 이후 대구 도시철도의 모든 역에는 안전시설이 강화되었고, 2009년 5월 29일 중앙로역 승강장에는 완전 밀폐형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었다.

8. 3. 희생자 유족 및 생존자들의 후유증
희생자들과 관계된 유족들은 참사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현재까지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생존자들의 상당수는 정신적 트라우마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55] 2005년 참사 2주기를 맞아 MBC에서 생존자들을 취재한 결과, 절대다수가 PTSD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사고 당시 유독가스를 과다 흡입한 영향으로 기도 화상을 입어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생존자도 많았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PTSD가 처음 소개되고 대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등 각종 대형참사가 발생했을 때 PTSD에 대한 의학적이고 효율적인 접근과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8. 4. 정부의 대처
사고 이후 정부는 전국 대도시의 각 지하철 운영 주체와 광역철도 운영 주체인 한국철도공사에 2006년까지 전 차량에 대한 내장재 교체를 완료하라고 지시하였다. 기존 차량은 좌석, 벽 내부 단열재 등에 가연성 소재인 천이나 면 따위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개조는 승객들이 직접 사용하게 되는 좌석에서 시작되었다. 서울메트로,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현재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를 비롯한 부산교통공사, 인천교통공사는 견고하고 불에 전혀 타지 않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금속으로 좌석을 교체하였고, 한국철도공사는 불연재 모켓시트로 교체하였다. 다만,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는 이후 전동차 의자에 모켓시트를 덧씌웠다.
2003년 하반기부터 2006년까지 로윈, SLS중공업, 흥일기업은 해당 차량기지에 출장하여 내장재 교체 작업을 실시하였고,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철도차량과 현대로템에서 제조된 전동열차는 로템 의왕공장, 창원공장으로 회송되어 내장재를 교체하였다. 대구도시철도공사도 이후 모든 좌석을 불연재 시트로 교체하였다.
한편, 지하철 승강장에 인공암벽을 사용하는 충무로역, 마천역, 가산디지털단지역 등은 철거 및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공암반이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라는 마감재를 사용하여 화재 시 유독가스를 발생시키고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인공암반을 사용하는 모든 역사에 대해 불연소재로 교체하게 되었다.
사고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은 2005년 4월 1일 전량 불연재 개조를 완료하였으며, 서울 지하철의 경우 퇴역 예정이었던 차량은 2009년까지 가연재 시트를 달고 운행하였다.
당국은 지하철역에 더 나은 안전 장비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고, 대구 도시철도 차량 내부에 내화성 스프레이 화학 물질을 추가했다. 6개 역이 보수 공사를 위해 운영 중단되었고 2003년 4월에 복구되었다.
8. 5. 사고 전동차 매각 논란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사고 전동차 총 12량 중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보존될 1량을 제외한 11량을 안심차량기지 보관 공간 부족과 재원 마련을 이유로 2008년 6월 26일 경기도 고철처리업체에 매각했다.[57] 하지만 유족들의 반발이 커지자 사고 전동차 반출을 중단하고 6량을 남겨 두었다. 이후 추모사업추진위와 협의 끝에 2008년 7월 25일 3량을 더 반출하여 사고 전동차는 118편성 1량, 130편성 2량이 남게 되었다. (1818호는 시민안전테마파크에, 1130호, 1730호는 안심차량기지에 사실상 방치)9. 방송 중계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정규 방송 프로그램을 일제히 중단하고 결방하여, YTN, MBN 등의 속보나 특보 체제로 편성하였다.[58][59][60] 재난방송 주관 방송사인 KBS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속보를 오후 12시에 처음 보도하자, 전 세계의 매스컴들이 긴급하게 움직였다. 같은 시각 KBS 뉴스를 접한 일본 NHK 서울지국도 KBS 보도를 인용해 이 소식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각인 NTV와 후지TV도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SBS와 MBC 뉴스 속보를 인용하여 긴급 보도로 타전했다.
10. 관련 미디어
- 영화 로봇, 소리[1]
-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2]
11. 영향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의 철도 안전 기준 및 대응 체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고로 인해 역내 배연 시설의 부족, 비상구 식별의 어려움, 유도 인력 부재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많은 희생자가 열차에서 탈출하고도 역 출구를 찾지 못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은 이러한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1. 1. 한국
이 사고 이후, 한국의 열차 내장재는 순차적으로 내화재로 교체되었다. 또한, 열차 도어콕크의 사용법이 승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여, 사용 방법 등을 차내에 명확히 표시하게 되었고, 열차 내 및 역사 내 액정 디스플레이 등에서도 사용법을 설명하는 영상 등을 비상시 행동 요령과 함께 방영하게 되었다.[1]한국 정부는 한국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와 서울특별시 지하철공사(후의 서울메트로, 현: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도시철도 각 사업자에게 2006년까지 전 차량의 내장재 교체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각사에서는 차내에서 가연성 내장재를 제거하고, 난연 소재나 내화 소재로 교체하였다. 특히 가연성의 천과 면을 많이 사용했던 통근용 차량의 좌석은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현: 서울교통공사) 차량에서는 내화성 스테인리스강 좌석으로, 한국철도청 차량에서는 난연성 모켓 소재로 교체되었고, 사고 이후 신규 제작된 차량에서는 처음부터 내화 대책이 강구되었다.[1]
또한 차량 내 소화기 추가 설치, 비상용 도어콕크 표시의 엄격화, 지하철 전 역에 방호복과 산소통 등이 들어있는 “구조 물자 보관소” 설치 등도 실시되었다.[1]
피해를 입은 1000계 118편성·130편성은 폐차되었지만, 그중 3량은 대구시에 있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보존되어 있다. 폐차에 따른 대체 신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1]
11. 2. 일본
이 사건은 일본에서도 현장에서 TV 생중계될 정도로 매스미디어를 통해 크게 보도되면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일본 국내 지하철에서는 재난 관리 재검토와 피난 훈련이 실시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 이후에도 소규모이지만 유사한 지하철 화재 사고가 발생했던 한국에서는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여러 가지 대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왜 당사국인 한국은 하지 않는가" 등과 같이, 조선일보 등의 매스미디어가 지하철 관리 조합 등을 비난한 적이 있었다.[9]일본 국내 철도의 화재 대책 기준은 과거 발생한 화재 사고를 바탕으로 한 방화 기준이 정해져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차량 하부 장비에서의 발화, 성냥이나 라이터에 의한 방화를 상정한 것이었으며, 휘발유 등을 사용한 대규모 화재는 상정하지 않았다.[10][11] 이 때문에, 국토교통성은 사건 이후 철도에 관한 기술상의 기준을 정하는 성명의 해석 기준을 변경하고, 지하철 등 여객차(A-A 기준차)를 포함한 일본 철도 차량의 내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더욱 대규모 화재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조치를 추가하도록 지시했다.
- 객실 천장 사용 재료에, 화재 발생 시 용융 낙하(고온으로 녹아 떨어짐)의 우려가 있는 수지 등의 사용을 제한[10]
- 기존의 연소 시험 내용에 '''내용융 낙하성''' 판정 항목을 추가하고, 콘형 히터에 의한 연소 시험을 추가[12][10]
- 열차의 방화 구획화
- 인접 차량으로부터의 연소 확대나 연기 유입 방지를 위해, 연결 차량의 객차 사이에 평상시 닫히는 구조의 관통문 등을 설치[10]
- 차내 표시 등의 충실
- 소화기 설치 장소를 승객이 보기 쉬운 위치에 표시[10]
- 선로에 내리면 감전의 위험이 있는 제삼궤조 방식 구간을 주행하는 차량을 제외하고, 도어콕크 위치를 표시[10]
- 원맨 운전 차량에 대한 설비 충실 (지하철 등을 주행하는 차량만)
- 승무원이 없는 후부 차량의 비상구(관통문)에서 피난이 가능하도록, 전부 승무원실에 후부 승무원실과 객실 사이의 칸막이 문의 잠금을 해제하는 기능(전자 잠금)의 설치와 함께 비상구(관통문) 근처에 해당 문의 개방 방법을 표시[10]
- 선로에 내리면 감전의 위험이 있는 제삼궤조 방식 구간을 주행하는 차량(전술한 도어콕크 위치를 표시하지 않는 차량)에서는, 객실에서 승무원과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에 운전 지령소 등과 연락할 수 있는 기능과 운전 지령소에서 차내 방송이 가능한 장치를 설치[10]
이러한 기준 개정에 따라, 사건 이후에 제조·갱신된 차량에서는 실내 형광등의 아크릴제 커버가 생략(게이한 10000계의 제4편성 이후나 긴테쓰 시리즈 21의 2005년도 제조분 이후 등) 또는 유리섬유 등 불연성의 것을 사용(JR 서일본 321계, JR 서일본 223계의 2000번대 4차차/2500번대 2차차 이후 등), 차량 관통로에 관통로 문 설치(삿포로시 교통국 8000형의 2006년도 이후의 증비차 등) 등 설계 변경이 이루어지고 있다. JR 동일본 E331계는 관통문 설치 의무화에 따라 "연결부에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연결차의 메리트가 상실되었다"는 것을 이유 중 하나로 양산이 보류되었다.
도쿄 지하철에서는 05계 13차차 이후의 신제 차량에 있어서, 내장재에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염소 가스나 시안화수소 등의 유독가스의 발생원이 되는 염화비닐이나 FRP 등의 합성수지계 재료의 사용을 그만두었다.[13] 구체적으로는 바닥 깔개를 염화비닐 재료에서 고무 재료로, 손잡이의 벨트를 염화비닐 재료에서 나일론 섬유로 한 외에, 천장의 공조 분출구를 FRP에서 금속제(알루미늄)로 변경했다.[13] 도쿄도 교통국(도에이 지하철)에 있어서도, 10-300형 이후의 신제 차량에 있어서, 동일한 설계 사상을 도입하고 있다.[14][15]
또, 일부 역에서는 정차 시 열차끼리 이웃하는 상대식 승강장의 선로 사이에 벽이나 유리제의 칸막이를 설치(나고야 시영 지하철 도야마 선 등에서 실시)하는 등, 연소 확대 대책이 강화되었다.
더욱 도쿄 소방청은 화재 예방 조례를 개정[16]하고, 소방 설비 및 방화 관리 체제의 규정을 강화했다. 또, 사건 등을 계기로 특별 소화 중대가 만들어졌다.
참조
[1]
웹사이트
Subway fire toll rises much higher
http://www.iht.com/a[...]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2003-03-27
[2]
웹사이트
Arsonist sets fire in South Korean subway
https://www.history.[...]
2003-02-18
[3]
웹사이트
S. Korean Man Gets Life for Fatal Subway Fire
http://en.people.cn/[...]
People's Daily
2003-08-06
[4]
뉴스
Victims' families remember deadly Daegu subway fire
https://www.koreatim[...]
2016-02-18
[5]
웹사이트
Daegu Safety Theme Park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http://english.visit[...]
[6]
문서
列車無線の交信記録
[7]
문서
電車マスコンキーとドアの設計
[8]
문서
電車窓の構造
[9]
뉴스
「大邱地下鉄放火事件」韓国は忘れ日本は研究し
http://www.chosunonl[...]
2005-02-20
[10]
간행물
地下鉄道における火災対策基準の改正について
日本鉄道車輌工業会
2005-04
[11]
간행물
車両の火災対策
https://bunken.rtri.[...]
鉄道総合技術研究所
2020-06
[12]
간행물
変わる天井 ー火災対策と天井材料ー
https://web.archive.[...]
近畿車輛
2006-10
[13]
간행물
東京地下鉄・東西線05系13次車
日本地下鉄協会
2004-11
[14]
간행물
東京都交通局都営新宿線用10-300形車両の概要
日本鉄道運転協会
2005-07
[15]
간행물
東京都交通局10-300形
ネコ・パブリッシング
2005-05
[16]
보고서
火災予防条例及び同施行規則の一部改正の概要
http://www.tfd.metro[...]
東京消防庁
2004
[17]
뉴스인용
[개요]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192명 사망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18-12-21
[18]
뉴스인용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60여명 구한 금호驛長 권춘섭씨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3-02-19
[19]
뉴스인용
‘철도안전 명예의 전당’ 건립
http://news.korail.c[...]
한국철도공사
2013-06-07
[20]
문서
팬터그래프
[21]
뉴스
기관사, 참사 피할 기회 4번 모두 놓쳤다
http://news.kbs.co.k[...]
KBS 뉴스 9
2003-02-21
[22]
뉴스
기관사, 주의운전 통보받고도 돌진
http://news.kbs.co.k[...]
KBS 뉴스 9
2003-02-19
[23]
뉴스
맞은편 전동차 기관사 사고직후 잠적 12시간만에 경찰 진술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3-02-19
[24]
뉴스
1080호 기관사 문 닫고 도주
http://news.kbs.co.k[...]
KBS 뉴스 9
2003-02-21
[25]
뉴스
1080호 기관사 불 옮겨붙자 마스터 키 뽑아 피신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3-02-21
[26]
뉴스
'차 죽이고 가야 돼' 사령실 지시
http://news.kbs.co.k[...]
KBS 뉴스 9
2003-02-25
[27]
뉴스
대구지하철공사 불리한 통신내용 녹음 축소 은폐/녹음테잎 원본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3-02-25
[28]
뉴스
사령실 초동 대처 잘못이 대형 참사 불러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3-02-21
[29]
뉴스
1080호 기관사 사령실 등 기본수칙 몰라 우왕좌왕 대참사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3-02-21
[30]
뉴스
자동단전장치 화재에 속수무책
http://mn.kbs.co.kr/[...]
KBS 뉴스 9
2003-02-22
[31]
뉴스
싼 것 찾다가 참사 부른다
http://news.kbs.co.k[...]
KBS 뉴스 9
2003-02-20
[32]
뉴스
저가입찰로 싸구려 전동차 제작
http://news.kbs.co.k[...]
KBS 뉴스 9
2003-02-21
[33]
뉴스
대구 지하철 역무실 등 인력 부족 위기 땐 속수무책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3-02-21
[34]
뉴스
50대 남자 방화 사건발생시 목격자 증언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2003-02-18
[35]
뉴스
용의자 이렇게 잡았다
http://news.kbs.co.k[...]
KBS 뉴스 9
2003-02-20
[36]
뉴스
범인은 신병 비관 지체장애자
http://news.kbs.co.k[...]
KBS 뉴스 9
2003-02-18
[37]
뉴스
지하철 방화 용의자 56살 정신 지체 장애자 병원서 체포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3-02-18
[38]
뉴스
'혼자 죽기 싫어서' 범행 동기
http://news.kbs.co.k[...]
KBS 뉴스 9
2003-02-19
[39]
뉴스
전동차 방화 용의자 50대 김씨 함께 죽으려고 방화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3-02-19
[40]
뉴스인용
‘대구’사망자 190~220명선
http://www.munhwa.co[...]
문화일보
2003-02-24
[41]
뉴스인용
대구지하철 참사-조 시장 무혐의 윤전사장 불구속 기소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02-09
[42]
뉴스인용
전동차 불 왜 빨리 번졌나?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02-09
[43]
뉴스인용
대구지하철 방화범 무기징역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02-09
[44]
뉴스인용
대구지하철 방화범 수감치료중 사망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4-08-31
[45]
뉴스인용
1심 선고공판…….두 기관사엔 금고 4·5년씩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02-09
[46]
뉴스
대구 지하철 참사 기관사, 5년 복역 뒤 출소해
https://news.naver.c[...]
중앙일보
[47]
뉴스인용
무료셔틀버스 첫날부터 '삐꺽' 대책위 지하철 운행중단 '촉구'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3-03-10
[48]
문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및 2호선 운전 취급역
[49]
뉴스인용
구조물 손상 중앙로 버스통행 금지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02-09
[50]
뉴스인용
중앙로 차량 통행 재개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02-09
[51]
뉴스인용
대구지하철 8개월 만에 운행재개
http://www.munhwa.co[...]
문화일보
2003-10-21
[52]
뉴스인용
'지하철 참사' 대구 중앙로역 정상화
https://news.naver.c[...]
한겨레
2003-12-31
[53]
뉴스
대구 지하철 전 구간 운행 재개
https://news.kbs.co.[...]
KBS 뉴스 9
2003-10-21
[54]
뉴스
대구 지하철 상처 딛고 완전 정상화
https://news.kbs.co.[...]
KBS 뉴스 9
2003-12-31
[55]
뉴스인용
지하철 참사 2주기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02-09
[56]
뉴스인용
마르지 않는 눈물…지하철 참사 추모식 풍경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02-09
[57]
뉴스인용
지하철 참사 전동차 왜 고철로 팔리게 됐을까?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09-12-25
[58]
뉴스
외신도 대구 지하철 참사 긴급보도
https://news.kbs.co.[...]
KBS 뉴스 9
2003-02-18
[59]
뉴스
일 언론 사린 독가스 사건 상기 대구 지하철 참사 충격 보도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2003-02-18
[60]
뉴스
CNN 등 외신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전세계 긴급 타전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2003-02-18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꼬꼬무 찐리뷰] 초등생 9명 죽은 축구부 합숙소 화재 사건…목숨 살릴 3번의 기회, 어른들이 놓쳤다
2003년 천안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사건의 전말을 다룬 기사로, 9명의 초등학생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와 생존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